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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Pastor Nam

12/22/2019 - 기쁜 소식

Updated: Mar 22, 2020



누가복음 2장 1-21절 기쁜 소식 12-22-2019 남영식


1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3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4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5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6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7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8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13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14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15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16 그리고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17 그들은 이것을 보고 나서,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18 이것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목자들이 그들에게 전해준 말을 이상히 여겼다.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자기들에게 일러주신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였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행할 때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수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다.


1. 성탄절의 의미, 유래.


성탄절은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축하는 날이다.


이 세상을 살다 간 이들 중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큼 큰 영향을 끼친 분이 있을까 싶다. 그분의 영향력은 너무도 크고 넓어서 우리 인류 문화에 깊이 뿌리 내렸다. 그분을 믿고 추종하는 수 많은 그리스도교 종파와 거기 속한 수많은 사람에 대하여는 두 말할 필요도 없고, 그밖의 세계에서도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 깊이 뿌리 내렸다.


오늘의 성탄 문화는 그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그 부산물인 성탄 캐롤, 성탄 선물, 산타나 흰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피치 못할 부분이긴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문화에 남긴 흔적이다.


그리스도교회가 처음부터 성탄절을 지키지는 않았다. 먼저는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념하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즉 적어도 수 세기가 지난 다음에서야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게 되었다.


성탄절의 날짜도 다양한데,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는 12월 25일을, 동방 계통의 정교회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킨다.


성탄절기는 주님의 성탄을 축하하는 것과 동지가 지나 낮이 길어지고 새해가 시작되는 계절의 변화와 관련된 축제가 결합되어 오늘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성탄절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낮의 길이 가장 짧은 때, 어두운 밤이 가장 긴 시기에 성탄절이 들어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빛을 가져오신 주님의 생애와도 잘 연결된다. 오늘 우리는 여러 모로 좋은 날에 좋은 뜻으로 그분의 성탄을 축하한다.


이곳에서 이 겨울이 지나 가려면, 아직 두달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이제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어둠과 추위도 물러가면서, 점차 따뜻하고 밝은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이 세상에 가지고 오신 빛과 열기가 이 계절의 변화처럼 세상의 어둠과 추위를 이기게 할 것으로 믿는다.


2. 누가복음의 성탄 이야기에 더 마음이 끌린다.


성경에는 두 가지의 성탄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마태복음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의 것이다.


마태복음의 이야기는 점성가들과 예루살렘 성에 있던 권력자들의 반응을 다룬다. 성탄절에 동방에서 별을 보고 점을 치던 점성가들이 예수 탄생의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을 방문했는데, 정작 거기 있는 전문가들은 그 소식을 소홀히 여겼고, 탄생한 아기는 학살당할 뻔한 위협에 처해져 먼 나라로 피난갈 수 밖에 없었다.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좀 더 자세하고 극적이다. 성탄절 한 밤중에 천사들이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온 세상을 구원할 분이 나셨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처음 경배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구주 탄생 소식이 널리 전해진다. 그리고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분은 머물 방이 없어서 짐승의 여물통인 구유에 누이게 된다.


나는 이 두 이야기 중에 누가복음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끌린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의 것이 더 서민 친화적이고, 구원을 더 폭넓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복음의 성탄 이야기에서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2. 한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세상을 구원할 이로 오신 이는 갓난 아기였다. 그는 누울 자리가 없어서 구유에 뉘였다. 그 모양이 더 없이 평범하고, 초라하다. 갓난 아기가 세상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그 일이 이루어지려면,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그리고 오시려면 힘 있는 가문에, 넉넉한 가정으로 오셔야지. 이렇게 가난하게 오셔서 무슨 힘을 쓰고, 무슨 변화를 일으켜 낼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 생각할만한 의미가 있는것 같다.


세상만사 어느날 갑자기 순식간에 일어날 수 없다. 힘 있고 많이 가진 사람이 세상을 좌우 하는 것 같지만, 진정한 변화는 세상의 변방에서, 힘 없는 한 개인을 통하여, 힘 없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한 갓난 아이가 자라고 자라서, 작은 일을 시작하고, 또 그것이 자라고 자라서 큰 흐름이 되고, 마침내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보통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조급하다. 갓난 아기가 자랄 때까지, 그가 시작한 작은 일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 주지 못한다. 당장 혁명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만들어 날 수 없는 변화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것은 사기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사기꾼을 원한다. 한 순간에 문제를 해결할 슈퍼맨을 원한다. 세상에 그런 인간은 없다. 진정한 변화는 그렇게 올 수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분이 일하신 방식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분이 처음 오실 때에 그분은 아주 작았다. 아주 작은 갓난 아기였다. 그분이 뜻을 품고 일을 시작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으므로, 태어난 아기는 눈에 띠지 않을 만큼 아주 작았다. 하지만 그의 몸은 자랐고, 그의 마음도 자랐으며, 그의 일도 함께 자랐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바꿨고, 앞으로도 바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잊는 신앙인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은 늘 조급하여 기다릴 줄을 모른다. 이렇게 당장의 변화를 요구하는 신앙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이 일하신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린 아기로 오신 예수, 구유에 누이신 아기는 대단히 상징적이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이 그림의 의미를 마음 깊이 새겼으면 한다.


3. 그 소식은 목자들에게 먼저 알려야 했다.


메시아 탄생 소식은 목자들에게 먼저 알려져야 했다. 그 소식은 소망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에게 먼저 들려져야 했다. 삶에 지친 소시민,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으로도 힘겨운 사람들, 그들에게 하늘에서 오는 이 소망이 필요했다.


구주 탄생 소식은 이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세상을 위하여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고, 지금 태어난 한 아이를 통하여 장차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삶에 지친 사람들이 있다면, 성탄은 바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소식은 이들에게 먼저 들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너를 기억 하시며, 이 세상을 돌보기 때문에, 너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시고, 도우실 것이라고, 더 나아가 너 같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고, 그러니 절망하지 말고 기운을 내라고 들려 주어야 한다.


이렇게 소망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사람들인 목자들에게, 주님의 성탄 소식이 먼저 전달되었다는 부분도 누가복음의 성탄 이야기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부분이다.


4. 그것은 온 백성에게 미쳐야 할 일이었다.


누가복음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소개할 때, 만민에게 선포되어야 할 기쁜 소식으로 선포하고 있다.


나는 누가복음의 이 시각을 오늘 우리 시대의 신자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구원이 저 유대인들만의 것일 수는 없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 그리스도교인들만의 것일 수도 없다.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교회 교파만을 위한 것일 수는 결코 없다. 하나님을 세상의 창조주라고 고백하면서 어떻게 그런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가?


그런데 오늘의 보수적인 그리스도교인, 특히 스스로 신실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긴 나머지, 자기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고 제거해도 되는 것인 양 행동한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태도이다. 이들은 성탄의 소식이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으로 선포되었다는 점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언급된 온 백성에는, 창조신앙에 비추어 볼 때, 온 인류가 포함되는 것이 옳다. 이것은 종교나 성별이나 연령이나 민족이나 출신 등.... 모든 한계와 차별을 넘어선다. 그것은 반드시 이 세계 전체이야야 한다. 하나님이 인류의 창조주시므로, 하나님의 구원도 온 인류에게 미치는 것이 맞다.


더 나아가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온 인류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맞다. 열린 마음으로,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는 것이 맞다. 어떤 형태의 배제나 차별도 나쁘지만, 예수 그리스도 종교의 이름으로 배제나 차별이나 증오를 말하는 것은 더욱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성 정체성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출신이 다르다고, 사상이 다르다고, 차별과 증오를 말하는 이들는 다 마귀의 자식들이요, 어둠의 자식들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늘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이어야만 한다. 이것을 잊지 말자.


5. 이 일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였다.


그리고 이 일이 하늘에는 영광스러운 일이고, 그 혜택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였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땅이 평화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주기도문의 기도처럼, 주의 나라와 주의 뜻이 이곳에 이루어진다면, 그 나라 그 뜻은 평화가 될 것이다. 모든 다툼과 모든 분쟁, 모든 착취와 억압이 사라지고, 누구나 마음 편히 사는, 평화로운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 당시의 불안한 세계가 꿈꾸었고, 오늘의 불안한 세계 역시 꿈꾼다. 나는 이 세계의 평화가 예수께서 실현하셨던 방식,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그 정신으로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이 소란스럽고 어지럽고 한 많은 세상에, 부디 예수를 통하여 내려 주려 했던 평화가 임하길 바란다. 예수가 아기로 오실 때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들에서 밤을 새며 양을 지키던 목자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평화를 소망한다.


주여,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 우리의 고단한 삶에, 오늘 우리의 이웃에게, 오늘 이 세계에, 특히 불안정한 이 세계에게 주님의 구원, 주님의 평화를 내려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질 날을 소망한다.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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